최신PC게임 계엄날 선관위 근무자 “화장실도 계엄군 허락받고 가···강압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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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길중 작성일25-07-24 06:19 조회2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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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PC게임 12·3 불법계엄 당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청사에 진입한 계엄군이 직원들의 휴대전화를 빼앗고 행동을 통제하는 등 강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법정 증언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재판장 지귀연)는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기소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 김용군 전 육군 대령의 12번째 공판을 열었다. 이날 재판에는 계엄 당일 선관위 통합관제실에서 근무하다가 ‘서버실로 안내하라’는 계엄군을 맞닥뜨린 보안업체 직원 이모씨와 박모씨가 증인으로 나왔다.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계엄군은 지난해 12월3일 밤 선관위 신관 2층에 있는 통합관제실 문을 두드렸다. 이씨가 문을 열자 허리에 권총을 찬 계엄군은 서버실 위치를 물으며 “(우리는) 국방부 소속이고, 지금 계엄령이 선포됐으니 협조해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소속 부대나 직함 등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씨는 대뜸 찾아온 계엄군에 ‘서버실 위치는 왜 물으시냐’고 되묻기도 했지만 “상부에 보고가 될 거니까 너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답만 들었다고 진술했다.
두 사람은 상사에게 상황을 알리려고 휴대전화 메시지를 입력하려던 중 계엄군에게 휴대전화를 “압수당했다”고 진술했다. ‘압수’라고 표현한 이유를 검사가 묻자 이씨는 “(계엄군이) 가져간 후에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없었고, 만지지도 못하게 했다”고 답했다. 휴대전화를 돌려달라고도 말해봤지만 계엄군은 “불필요한 질문은 받지 않겠습니다”라며 단칼에 거절했다고 한다.
당직근무 중이었던 이들은 계엄군에 행동 하나하나를 통제받았다고 증언했다. 이씨는 계엄군이 “화장실을 가거나 흡연을 하러 갈 때도 승낙을 받고 가야 한다고 했다”며 흡연을 할 때도 계엄군이 따라 나왔다고 말했다. 약 3시간가량 계엄군이 지정한 의자에만 앉아 있었고 업무 공간으로 이동할 때는 계엄군의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계엄군이 서버실에 물리적인 손상을 입히거나 폭력적으로 행동하지는 않았지만, 이씨는 충분히 부당한 상황으로 느꼈다고 진술했다. 그는 “행동을 통제하니 강압적 분위기라고 느꼈다”며 “(계엄군이) 총기를 소지하고 있어 당황스러웠고, 위협적이었다”고도 했다.
김 전 장관 측 변호인은 “총은 개인화기니까 당연히 (군이) 가져와야 하는 건데, 군 복무를 안 해서 모르죠?”라고 증인을 압박했다. 앞서 이씨는 ‘군 복무를 했냐’는 변호인의 물음에 자신이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했다고 밝혔다. 이에 김 전 장관 측은 ‘증인이 계엄군의 정당한 계엄사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는 취지로 증언을 흔들려 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법정에선 일부 방청객이 소란을 일으켜 재판부가 퇴정을 명령하기도 했다. 재판부로부터 ‘나가달라’는 요구를 받은 한 방청객은 벌떡 일어나 “선관위가 당당하게 조사를 받았다면 대통령이 왜 비상계엄을 했겠느냐”며 법정을 나갔다.
하나은행에서 약 48억원 규모 부당대출 금융사고가 발생했다.
하나은행은 지난 18일 부당대출(업무상배임), 외부인 금융사기, 금품수수, 사적 금전대차 등으로 47억9089만5000원의 금융사고가 발생했다고 21일 공시했다.
하나은행 등에 따르면 직원 A씨는 지난 2016년 6월8일부터 2024년 9월3일까지 약 8년간 허위 서류 등을 받고 대출을 과도하게 내준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대출 관련인으로부터 금품을 받고 사적으로 돈도 빌려준 것으로 파악됐다.
자체 조사로 A씨의 비위를 발견한 하나은행은 해당 직원을 대기발령 조치했고 향후 형사 고소도 할 예정이다.
하나은행에선 지난 4월에도 한 직원이 거래처에서 금품을 받고 74억원대 부당대출을 내준 것으로 드러났다.
권오남 서울대 수학교육과 교수(64)는 여성 최초로 세계수학교육심리학회(PME) 회장에 선출됐다. 아시아 출신으로는 두번째다. PME는 수학교육 분야에서 가장 권위를 인정받는 학회다. 취임을 위해 칠레 산티아고로 출국을 앞둔 권 교수를 지난 8일 서울 강남구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여성과총) 사무실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직접 들어 본 그의 커리어에는 ‘최초’가 ‘최후’로 그쳐선 안 된다는 사명감이 녹아 있었다. 서울대 수학교육과 최초 여성 교수 등의 여러 수식을 가진 연구자로서 또 다른 분야의 ‘첫번째’들을 위해 여성과총에서도 회장을 맡고 있다.
권 교수는 본래 수학을 전공했으나 유학 도중 수학교육 분야로 방향을 넓혔다. 한국에선 통했던 방식이 미국에서 한계에 부딪히면서 수학을 가르치고 배우는 방식에 관심을 두게 됐다. 수학 분야에서 여학생, 여성 연구자로서 경험했던 소수자성은 다음에 따라올 이들을 위해 길을 닦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졌다. 자칭 ‘내향인’인 그는 점차 ‘노력형 인싸’가 됐다.
많은 학생에게 수학은 ‘공포의 과목’이 된 지 오래다. ‘수포자’란 말도 더는 낯설지 않다. 그러나 권오남 교수는 “수학은 정답보다는 좋은 질문을 기다리는 학문”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학생들을 문제풀이 기술자가 아닌 창의적인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성장시키는 수학교육 정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의 답변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이들이 수학을 좋아하도록 만들 수 있을지’란 고민이 담겨 있었다.
- 보통 학생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과목이 수학인데요. 어릴 때부터 수학을 좋아하셨나요?
“초등학교 5학년 시절, 담임선생님께서 수업 중 어려운 산수 문제를 풀도록 저를 자주 칠판 앞으로 부르셨습니다. 책임감과 긴장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던 그 시간이 저를 수학에 몰입하게 했습니다. 명쾌하게 풀었을 때 쾌감, 복잡한 상황을 간단한 논리로 정리해낼 수 있다는 점에 매료됐고 특히 추상적인 개념을 기호화해 간결하게 표현하는 함축성에도 깊은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러다가 중학교 2학년 때 안동에서 서울로 유학을 왔어요. 그때는 사투리가 더 심했고 새 학교에서는 존재감이 없었죠. 수학 시간에 떨리지만 손들고 나가서 문제를 풀었고, ‘안동에서 온 애가 수학을 잘한다더라’ 해서 친구도 많이 생겼어요. 돌이켜 보면 수학이 사회적인 인정을 받는 하나의 수단이었던 것 같아요. 수학을 좋아한 게 먼저인지, 잘하게 된 게 먼저인지 모르겠어요. 수학을 업으로 삼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 건 대학교 와서의 일이에요.”
- 수학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사람들은 수학을 문제를 푸는 스킬(기술)로만 생각하는데 실제 수학자들은 ‘존재하는가’를 물어봅니다. 어떤 현상을 모델링하려면 그것을 단순화, 추상화, 상징화해야 해요. 그런데 해가 없는 방정식이라면 완전히 고생이잖아요. 그러니까 먼저 그것이 수학적 세계에서 ‘있느냐’를 물어봐야 해요. ‘이 문제에 해가 있는가’를요. 그러니까 수학은 존재에 관한 문제죠. 그 다음으로는 해가 독특하고 고유한가(Uniqueness)를 봐야 합니다. 해법이 하나이거나 적어야 유효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존재성과 유효성이 굉장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그다음 문제입니다.”
- 수학이 현실 문제를 해결한 사례는 무엇인가요?
“수학은 복잡한 세상을 간결하고 정확하게 바라보게 해주는 사고의 틀입니다. 세상에 질문을 던지고 구조를 발견하는 언어이자 도구죠. 예를 들어 코로나19 확산 예측에 사용된 모델링은 현실 세계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수학적으로 모델링함으로써 사회적 의사결정에 기여한 대표 사례입니다. 수면 패턴에 관한 연구, 날씨 예측, 인공지능, 버스 도착 시각 같은 모든 것이 다 수학이죠. 단지 문제 푸는 기술을 주로 익히다 보니 학생들이 그걸 인지하지 못합니다.”
- 고등학교 졸업 후 수학교육과에 온 학생들이 그 간극을 많이 느낄 것 같아요. 어떤 반응이 나타나나요?
“전 세계적으로 이중단절(double discontinuity)이라는 용어가 있어요. 고등학교 때 배우는 수학과 대학에서 배우는 수학이 달라 너무나 충격이 큰 것이죠. 고등학교에서는 제일 말단에 있는 (문제풀이) 기술만 하다가, 대학에 와서 본질적인 질문을 해야 하니까 그렇습니다. 제가 가르치는 예비교사들도 현직에 가면 대학에서 배웠던 고민을 적용하기가 쉽지 않아 다시 문제풀이 기술 중심으로 가르칠 가능성이 크지요. 그래서 이 현상을 이중단절이라고 명명한 것입니다.”
- 어떤 계기로 수학교육 분야를 커리어로 삼게 되셨나요?
“한국에서 수학 석사를 끝내고 유학을 갔는데요. 숙제할 때 미국 친구들이 잘 모르는 걸 제가 가르쳐줬거든요. 그런데 그게 몇 년이 지나면 역전이 되더라고요. ‘얘들은 하나도 몰랐던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창의적이지?’, ‘왜 이렇게 질문을 잘하지?’ 싶어서 힘들었습니다. 다른 과를 봐도 다들 저처럼 코스웍은 잘하는데 논문 쓰는 걸 힘들어하더라고요. 처음에는 ‘나는 왜 이 문제를 이렇게밖에 보지 못할까’하며 내 탓을 했지만 환경으로 (문제의식이) 확장됐죠. 이건 나만의 사례가 아니라 한국의 교육 상황이 아닌가. 나는 내게 주어진 구조와 교육 환경에서 최선으로 달려왔으니까요. 우리는 이렇게 질문을 안 하는 환경이었구나. 우리가 받아온 교육방식 즉 정답 중심, 설명 암기식 교육의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수학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수학을 어떻게 배우고 가르치는지를 탐구해야겠다는 결심으로 수학교육의 길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박사 논문을 한 학기 유예하고 수학교육과에서 연구를 했죠.”
- 여성 연구자로서 수학 분야에서 롤모델을 찾기 어땠나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밟는 동안 수학 분야에 여학생과 여성 교수가 매우 소수였다는 점도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1990년대 초 이 분야 대가를 기념하는 콘퍼런스에 간 적이 있는데, 발표자 중 여성은 단 한 명이었습니다. 교수 부부였던 사람이었어요. 그것이 주는 메시지는 ‘수학자 남편을 두지 않는 한 이 분야에서 내가 성공할 수 있을까’였어요. 수학을 공부하는 여학생이 너무 없다는 건 나의 롤모델이 더 없다는 것이니까요. 굉장히 심각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이 생물학적인 걸까 사회적인 요인인 걸까 궁금해서 나중에 이런 걸 연구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여성들이 유입을 안 해서 수적으로 열세이다 보니 대성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죠. 유입, 성장이 다 문제였죠.”
- 사회문화적인 영향을 무시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저도 ‘여자가 무슨 수학을 하냐’는 말 많이 들었습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실력과 의지를 의심받는 순간들이 있었고, 교육 환경과 정책이 어떻게 형성되느냐에 따라 학문적 다양성과 공정성이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연구를 통해 여성과 수학에 관한 통념이 학교와 사회를 통해 증폭된다는 것도 발견했어요. 1995년 <한국여성학>에 발표한 논문인데요. 당시 소위 ‘고3 역전설’이라는 걸 발견하고 너무 놀랐어요. 선생님들이 ‘고2 때는 너희가 잘하는데 고3 돼봐라, 너희 체력도 약하니까 남학생들한테 역전된다’ 이런 말을 명시적으로 한다는 거예요. 당시 인터뷰한 여학생들은 공부를 굉장히 잘하는 학생들이었는데 ‘고3 역전설이 실현될까 불안해요’, ‘실제로 그렇게 되면 어떡하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재판장 지귀연)는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기소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 김용군 전 육군 대령의 12번째 공판을 열었다. 이날 재판에는 계엄 당일 선관위 통합관제실에서 근무하다가 ‘서버실로 안내하라’는 계엄군을 맞닥뜨린 보안업체 직원 이모씨와 박모씨가 증인으로 나왔다.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계엄군은 지난해 12월3일 밤 선관위 신관 2층에 있는 통합관제실 문을 두드렸다. 이씨가 문을 열자 허리에 권총을 찬 계엄군은 서버실 위치를 물으며 “(우리는) 국방부 소속이고, 지금 계엄령이 선포됐으니 협조해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소속 부대나 직함 등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씨는 대뜸 찾아온 계엄군에 ‘서버실 위치는 왜 물으시냐’고 되묻기도 했지만 “상부에 보고가 될 거니까 너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답만 들었다고 진술했다.
두 사람은 상사에게 상황을 알리려고 휴대전화 메시지를 입력하려던 중 계엄군에게 휴대전화를 “압수당했다”고 진술했다. ‘압수’라고 표현한 이유를 검사가 묻자 이씨는 “(계엄군이) 가져간 후에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없었고, 만지지도 못하게 했다”고 답했다. 휴대전화를 돌려달라고도 말해봤지만 계엄군은 “불필요한 질문은 받지 않겠습니다”라며 단칼에 거절했다고 한다.
당직근무 중이었던 이들은 계엄군에 행동 하나하나를 통제받았다고 증언했다. 이씨는 계엄군이 “화장실을 가거나 흡연을 하러 갈 때도 승낙을 받고 가야 한다고 했다”며 흡연을 할 때도 계엄군이 따라 나왔다고 말했다. 약 3시간가량 계엄군이 지정한 의자에만 앉아 있었고 업무 공간으로 이동할 때는 계엄군의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계엄군이 서버실에 물리적인 손상을 입히거나 폭력적으로 행동하지는 않았지만, 이씨는 충분히 부당한 상황으로 느꼈다고 진술했다. 그는 “행동을 통제하니 강압적 분위기라고 느꼈다”며 “(계엄군이) 총기를 소지하고 있어 당황스러웠고, 위협적이었다”고도 했다.
김 전 장관 측 변호인은 “총은 개인화기니까 당연히 (군이) 가져와야 하는 건데, 군 복무를 안 해서 모르죠?”라고 증인을 압박했다. 앞서 이씨는 ‘군 복무를 했냐’는 변호인의 물음에 자신이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했다고 밝혔다. 이에 김 전 장관 측은 ‘증인이 계엄군의 정당한 계엄사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는 취지로 증언을 흔들려 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법정에선 일부 방청객이 소란을 일으켜 재판부가 퇴정을 명령하기도 했다. 재판부로부터 ‘나가달라’는 요구를 받은 한 방청객은 벌떡 일어나 “선관위가 당당하게 조사를 받았다면 대통령이 왜 비상계엄을 했겠느냐”며 법정을 나갔다.
하나은행에서 약 48억원 규모 부당대출 금융사고가 발생했다.
하나은행은 지난 18일 부당대출(업무상배임), 외부인 금융사기, 금품수수, 사적 금전대차 등으로 47억9089만5000원의 금융사고가 발생했다고 21일 공시했다.
하나은행 등에 따르면 직원 A씨는 지난 2016년 6월8일부터 2024년 9월3일까지 약 8년간 허위 서류 등을 받고 대출을 과도하게 내준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대출 관련인으로부터 금품을 받고 사적으로 돈도 빌려준 것으로 파악됐다.
자체 조사로 A씨의 비위를 발견한 하나은행은 해당 직원을 대기발령 조치했고 향후 형사 고소도 할 예정이다.
하나은행에선 지난 4월에도 한 직원이 거래처에서 금품을 받고 74억원대 부당대출을 내준 것으로 드러났다.
권오남 서울대 수학교육과 교수(64)는 여성 최초로 세계수학교육심리학회(PME) 회장에 선출됐다. 아시아 출신으로는 두번째다. PME는 수학교육 분야에서 가장 권위를 인정받는 학회다. 취임을 위해 칠레 산티아고로 출국을 앞둔 권 교수를 지난 8일 서울 강남구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여성과총) 사무실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직접 들어 본 그의 커리어에는 ‘최초’가 ‘최후’로 그쳐선 안 된다는 사명감이 녹아 있었다. 서울대 수학교육과 최초 여성 교수 등의 여러 수식을 가진 연구자로서 또 다른 분야의 ‘첫번째’들을 위해 여성과총에서도 회장을 맡고 있다.
권 교수는 본래 수학을 전공했으나 유학 도중 수학교육 분야로 방향을 넓혔다. 한국에선 통했던 방식이 미국에서 한계에 부딪히면서 수학을 가르치고 배우는 방식에 관심을 두게 됐다. 수학 분야에서 여학생, 여성 연구자로서 경험했던 소수자성은 다음에 따라올 이들을 위해 길을 닦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졌다. 자칭 ‘내향인’인 그는 점차 ‘노력형 인싸’가 됐다.
많은 학생에게 수학은 ‘공포의 과목’이 된 지 오래다. ‘수포자’란 말도 더는 낯설지 않다. 그러나 권오남 교수는 “수학은 정답보다는 좋은 질문을 기다리는 학문”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학생들을 문제풀이 기술자가 아닌 창의적인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성장시키는 수학교육 정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의 답변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이들이 수학을 좋아하도록 만들 수 있을지’란 고민이 담겨 있었다.
- 보통 학생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과목이 수학인데요. 어릴 때부터 수학을 좋아하셨나요?
“초등학교 5학년 시절, 담임선생님께서 수업 중 어려운 산수 문제를 풀도록 저를 자주 칠판 앞으로 부르셨습니다. 책임감과 긴장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던 그 시간이 저를 수학에 몰입하게 했습니다. 명쾌하게 풀었을 때 쾌감, 복잡한 상황을 간단한 논리로 정리해낼 수 있다는 점에 매료됐고 특히 추상적인 개념을 기호화해 간결하게 표현하는 함축성에도 깊은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러다가 중학교 2학년 때 안동에서 서울로 유학을 왔어요. 그때는 사투리가 더 심했고 새 학교에서는 존재감이 없었죠. 수학 시간에 떨리지만 손들고 나가서 문제를 풀었고, ‘안동에서 온 애가 수학을 잘한다더라’ 해서 친구도 많이 생겼어요. 돌이켜 보면 수학이 사회적인 인정을 받는 하나의 수단이었던 것 같아요. 수학을 좋아한 게 먼저인지, 잘하게 된 게 먼저인지 모르겠어요. 수학을 업으로 삼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 건 대학교 와서의 일이에요.”
- 수학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사람들은 수학을 문제를 푸는 스킬(기술)로만 생각하는데 실제 수학자들은 ‘존재하는가’를 물어봅니다. 어떤 현상을 모델링하려면 그것을 단순화, 추상화, 상징화해야 해요. 그런데 해가 없는 방정식이라면 완전히 고생이잖아요. 그러니까 먼저 그것이 수학적 세계에서 ‘있느냐’를 물어봐야 해요. ‘이 문제에 해가 있는가’를요. 그러니까 수학은 존재에 관한 문제죠. 그 다음으로는 해가 독특하고 고유한가(Uniqueness)를 봐야 합니다. 해법이 하나이거나 적어야 유효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존재성과 유효성이 굉장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그다음 문제입니다.”
- 수학이 현실 문제를 해결한 사례는 무엇인가요?
“수학은 복잡한 세상을 간결하고 정확하게 바라보게 해주는 사고의 틀입니다. 세상에 질문을 던지고 구조를 발견하는 언어이자 도구죠. 예를 들어 코로나19 확산 예측에 사용된 모델링은 현실 세계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수학적으로 모델링함으로써 사회적 의사결정에 기여한 대표 사례입니다. 수면 패턴에 관한 연구, 날씨 예측, 인공지능, 버스 도착 시각 같은 모든 것이 다 수학이죠. 단지 문제 푸는 기술을 주로 익히다 보니 학생들이 그걸 인지하지 못합니다.”
- 고등학교 졸업 후 수학교육과에 온 학생들이 그 간극을 많이 느낄 것 같아요. 어떤 반응이 나타나나요?
“전 세계적으로 이중단절(double discontinuity)이라는 용어가 있어요. 고등학교 때 배우는 수학과 대학에서 배우는 수학이 달라 너무나 충격이 큰 것이죠. 고등학교에서는 제일 말단에 있는 (문제풀이) 기술만 하다가, 대학에 와서 본질적인 질문을 해야 하니까 그렇습니다. 제가 가르치는 예비교사들도 현직에 가면 대학에서 배웠던 고민을 적용하기가 쉽지 않아 다시 문제풀이 기술 중심으로 가르칠 가능성이 크지요. 그래서 이 현상을 이중단절이라고 명명한 것입니다.”
- 어떤 계기로 수학교육 분야를 커리어로 삼게 되셨나요?
“한국에서 수학 석사를 끝내고 유학을 갔는데요. 숙제할 때 미국 친구들이 잘 모르는 걸 제가 가르쳐줬거든요. 그런데 그게 몇 년이 지나면 역전이 되더라고요. ‘얘들은 하나도 몰랐던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창의적이지?’, ‘왜 이렇게 질문을 잘하지?’ 싶어서 힘들었습니다. 다른 과를 봐도 다들 저처럼 코스웍은 잘하는데 논문 쓰는 걸 힘들어하더라고요. 처음에는 ‘나는 왜 이 문제를 이렇게밖에 보지 못할까’하며 내 탓을 했지만 환경으로 (문제의식이) 확장됐죠. 이건 나만의 사례가 아니라 한국의 교육 상황이 아닌가. 나는 내게 주어진 구조와 교육 환경에서 최선으로 달려왔으니까요. 우리는 이렇게 질문을 안 하는 환경이었구나. 우리가 받아온 교육방식 즉 정답 중심, 설명 암기식 교육의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수학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수학을 어떻게 배우고 가르치는지를 탐구해야겠다는 결심으로 수학교육의 길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박사 논문을 한 학기 유예하고 수학교육과에서 연구를 했죠.”
- 여성 연구자로서 수학 분야에서 롤모델을 찾기 어땠나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밟는 동안 수학 분야에 여학생과 여성 교수가 매우 소수였다는 점도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1990년대 초 이 분야 대가를 기념하는 콘퍼런스에 간 적이 있는데, 발표자 중 여성은 단 한 명이었습니다. 교수 부부였던 사람이었어요. 그것이 주는 메시지는 ‘수학자 남편을 두지 않는 한 이 분야에서 내가 성공할 수 있을까’였어요. 수학을 공부하는 여학생이 너무 없다는 건 나의 롤모델이 더 없다는 것이니까요. 굉장히 심각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이 생물학적인 걸까 사회적인 요인인 걸까 궁금해서 나중에 이런 걸 연구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여성들이 유입을 안 해서 수적으로 열세이다 보니 대성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죠. 유입, 성장이 다 문제였죠.”
- 사회문화적인 영향을 무시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저도 ‘여자가 무슨 수학을 하냐’는 말 많이 들었습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실력과 의지를 의심받는 순간들이 있었고, 교육 환경과 정책이 어떻게 형성되느냐에 따라 학문적 다양성과 공정성이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연구를 통해 여성과 수학에 관한 통념이 학교와 사회를 통해 증폭된다는 것도 발견했어요. 1995년 <한국여성학>에 발표한 논문인데요. 당시 소위 ‘고3 역전설’이라는 걸 발견하고 너무 놀랐어요. 선생님들이 ‘고2 때는 너희가 잘하는데 고3 돼봐라, 너희 체력도 약하니까 남학생들한테 역전된다’ 이런 말을 명시적으로 한다는 거예요. 당시 인터뷰한 여학생들은 공부를 굉장히 잘하는 학생들이었는데 ‘고3 역전설이 실현될까 불안해요’, ‘실제로 그렇게 되면 어떡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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